이지(李漬){3} 간략정보 시대 조선 생몰년 미상() 본관 자 호 시호 활동분야 문신 다른 이름
상세정보 이지(李漬){3} 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1402년(태종 2)사헌부지평 당시 왕이 행차하는데 군사들이 민가에 들어가서 폐단을 일으키자 그 소임을 게을리 하였다 하여 책임을 지고 사직하였다. 그 직후 집의 윤창(尹彰)을 두둔한 죄로 다시 탄핵되었다. 1409년에는 경력으로 압록강변에 명나라 사신의 영봉(迎逢)을 위하여 파견되었는데, 당시 요동군인이 야심을 틈타서 민가에 들어가 강제로 면포(綿布)를 주고 소 116두와 말 8필을 빼앗아가자, 명나라 사신을 설득하여 되돌려받은 적이 있다. 1411년 사헌부집의가 되었고, 1414년에는 양주부사 당시 둔전(屯田)을 함부로 설치하였다 하여 탄핵이 되기도 하였다. 1418년(세종 즉위년)판종부시사를 거쳐 1429년 해주목사를 지냈다.
참고문헌太宗實錄, 世宗實錄. 〈孫承喆〉
http://www.Koreandb.net/에서 비슷한 인물을 찾아냈는데, 혹여 이분이 우리집안의 찬성공 이지가 아닐는지요?? 제 추측입니다만, 6세 녹후는 고려 충숙왕조이고, 7세 흥원은 고려 공민왕조인데, 그의 아들 휘 인이 고려조에 정2품 정당문학을 역임한 것으로 본다면, 대충 휘 인의 아들 휘 지는 조선 초기에 살았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